출생과 성장
1996년 9월 30일 제 10호 학보에 게재한 내용입니다.
함경남도 정평군 봉양면에서 소작농이셨던 부친 韓南씨와 모친 尹南씨의 장남으로 1913년 태어나셨으며, 아래로 동생 한 분이 계셨다고 한다. 현제 선생님에 비해 기골이 장대하셨다는 동생 분은 트럭 일에 종사하셨는데, 기차가 달려오는 철도 건널목에서 고장난 트럭을 급히 밀다가 늑막염에 걸리게 되었고, 결국 이로 인해 유명을 달리 하셨다.

어린 나이에 변변한 치료조차 받아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동생의 죽음에 대한 충격은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고, 깊은 회의에 빠졌던 선생님에게 의술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주는 동기가 되었다.
 
선생님은 이내 한의학에 심취하게 되었으며, 대략 16세 때의 일로 추정된다. 이때부터 집을 떠나 본격적인 사회 생활을 시작하게 되셨고, 대개의 객지 생활이 그렇듯이 거친 노역으로부터 작은 수공업과 상업에 이르기까지 여러 생활을 전전하셨다. 일본 치하에서 생계 유지와 생업을 위해서 일본어를 사용할 줄 알아야 했던 현실은, 독학으로 일본어를 깨우치게 했고 지금도 의사소통은 물론 읽고 씀에 모국어 수준의 유창한 능력을 갖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이런 부분은 선생님의 삶이나 생활에 대한 자세를 읽을 수 있는 단서로 더 발전적인 삶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목표가 정해지면 끝까지 파고드는 집요함과 성실함을 짐작케 한다. 학교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한 처지였음에도 의사소통만이 아니라 읽고 쓸 수 있는 외국어 습득을 위해 쏟아 온 독학의 자취가 그렇고 한의사 면허를 취득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더욱 그와 같은 생각을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