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의 결정과 풍수지리
1996년 9월 30일 제 10호 학보에 게재한 내용입니다.
당시 학교 설립을 위한 재원으로는 동산, 부동산을 포함하여 약 200억 상당의 예산을 투입하고 부지로는 가장 완벽한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공주를 결정하셨다는 데, 선생님께서 보셨던 입지조건이란 주로 풍수적인 요소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지리적으로 건축물을 세우고 학생을 육성하기에 적합한 곳이냐?”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에서 시작하여 지형의 생김과 방향, 그리고 “물판(물의 흐름)이 역수(逆水)냐, 순수(順水)냐?”의 문제 등, 큰 줄기와 흐름을 먼저 보시고 나서 건축물의 성격에 따라 들어서야 할 위치나 방향 등의 세부적인 사항들을 결정하셨다고 한다.
이 부분에 관한 이야기는 학교 풍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서용호 선생의 말씀도 있지만 건축물의 배치와 위치가 아주 정확하고 적절한 곳에 들어서 있다는 것이며, 구작골의 전설과 할미당의 전설은 학교가 개교한 이후 접한 내용들로 지형적 조건과 학교 설립의 당위성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결국, 입지조건이 가장 뛰어나고 항구적으로 평준화를 피할 수 있다는 두가지 이유로 처음 거론되었던 성남의 인수나 상계동쪽의 설립을 포기하고 이곳 공주의 광정을 택하게 된 것을 알게 되셨다고 한다.

“만사에 풍수 아닌 것이 없다.”는 말씀은 선생님이 풍수에 대해 갖는 신뢰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며, 치료나 처방조차도 역학적 방법을 접목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병이 없어야 할 사람이 질병을 앓고 있거나 치료가 되어야 할 사람이 치료되지 않고 장기화 될 때, 또는 병의 원인을 파악하기 힘들 때는 그 사람의 체질이나 생활 환경은 물론 사주까지 확대하거나 주역 등의 방법을 접목하여 병이나 약만이 아닌 다른 치료나 처방을 내리기도 하셨다는 것이다.

‘한의학의 마지막 과정일까?’ 따지고 보면 한의학조차도 동양 철학의 흐름 속에 자리잡은 지류에 불과하다면 동양철학의 정수요 세상의 섭리랄 수 있는 주역의 세계에까지 한의학의 영역을 확대하고 한의사로서의 완성이며 入神의 경지를 위해 열정을 쏟는 것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