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사랑
1996년 9월 30일 제 10호 학보에 게재한 내용입니다.
선생님이 꿈꾸었던 사인여천의 세계는 학교의 설립만이 모두는 아니었던 것 같다. 공익 법인이나 비영리 법인에 대한 설립을 구체화 하셨고, 특별히 학교가 아니더라도 특정 단체나 종교를 떠나서 지원해 준 사례가 많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선생님은 정작 토속 신앙 정도에 의존하고 계시면서도 아무런 관계가 없는 특정 종교 단체에 기도원 자리를 기증한 사례도 있었고,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과 이북 출신의 실향민들을 위해 금전적인 지원이나 식량 등의 지원은 거의 연례적으로 치른 행사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는 단체든 개인이든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망설이지 않으셨다는 것인데, 실제 “아무도 모르는 덕행과 미담은 끝도 한도 없다.”는 것이 지인들의 말씀이다. “선생님을 잘 아신다.”는 國仙徒의 지도자 한 분은 그 내용을 묻자 “선생님께서 절대 원치 않을 것이다.”라고 웃으며 정중하게 거절하셨다. 한동현 이사장님조차도 선생님의 바깥 활동에 대해서 더욱 알지 못하며, 다만 동네의 어려운 분들을 위해 명절 때면 매년 쌀이며 계란 등을 대량으로 구입해 나누어주었던 일들 정도만 알고 있다고 어릴 때의 기억을 회고해 주셨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과연 무엇을 위해 가족의 만류도 주위의 반대도 뿌리치며 당신의 삶의 결정들이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이웃을 위해 아니 생면부지의 이 학생들에게 주신 것인가? 따지고 보면 경제적 형편이나 여력이야 더 나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고, 더 많은 지식과 더 깊이 있는 정신 세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경제적 여유나 정신 세계의 문제만도 아니리라! 그렇다면 진정 우리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이었으며, 행동으로 보여 주신 의미와 기대는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오늘 선생님의 그늘 아래서 삶을 위한 다짐과 의지를 불태워 가듯이 선생님의 설립정신과 사랑이 100년 뒤에도 아니 1000년 뒤에도 변함 없이 지속되기를 바라며, 이 땅의 동량이 되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 여든 넷의 연세, 어떤 일에 의욕이나 목표를 갖기엔 인간적인 연륜은 무욕의 세월로, 세계 속으로 자꾸만 달려가고 있다. 내가 사랑하고 또 존경하는 분의 삶의 시간이 더 오래도록 연장되기를 소망한다면 욕심일까? 삶의 가치나 질이 시간과 세월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 땅에 우리와 함께 계시는 날이 더 많기를 진심으로 빌어 보며 건강이 유지되는 그날까지 만이라도 부디 편하고 복된 시간이 되시길 소망해 본다.

1986. 9월 최 용 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