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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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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2월 05일 11시 03분 4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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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야! 내가 네게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구나!

등  록 파 일  

00야! 내가 네게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구나!

M은 2학년 때 전학 왔다. 적응을 잘못한 탓인지 하루가 멀다 하고 말썽을 부렸다. 무단 외출하여 학교 앞 PC방에서 나오다 교장선생님께 걸리고 런던 올림픽 때는 축구를 본다며 무단이탈하여 밤을 새고 들어왔다. 툭하면 자율학습시간에 기숙사에 틀어박혀 잠을 잤다. 한번은 휴일 자율학습시간인데 M이 없었다. 기숙사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아무리 학교를 다 뒤져도 오리무중이었다. 학교 앞 PC방에도 M은 없었다. 요즘 M이 많이 힘들어 한다는 같은 호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니 겁이 잔뜩 났다. 혹시 하는 심정으로 아이들의 비밀통로를 통해 무단으로 기숙사 침입을 했다. M은 태연히 자고 있었다. 학교당국의 비난과 강력한 조치 요구가 빗발쳤다. 심지어 학교를 내보내라는 요구도 있었다.
하지만 난 왠지 그런 M이 미운 것만은 아니었다. 묘하게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었고 잔뜩 화가 났다가도 막상 M이 나타나면 반가워서 손을 맞잡고 서로 떠들며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 날인가 M의 부모님이 오셨다. 특이한 것은 교육문제에 있어서 M의 아버지가 엄마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셨다. 국내 유명대학의 교수님이신데도 소탈하고 자상하신분이셨다. 그런 아버지를 M은 “꼰대”라고 불렀다. 자신이 원치도 않았는데 이곳에 전학을 시켰다고 격분하고 있었다. 참다못한 내가 M을 불러 세웠다. “잠시 이야기 좀 하자” 우리는 서쪽계단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는 서산에 기울고 있었고 주위는 서늘해졌다. 그날이후 난 M을 함부로 비난하지 않았다. 어른이든 아이든 사람은 누구나 말 못할 사연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M은 서서히 변해갔다. 여전히 말썽을 부리고 내속을 썩혔지만 분명한 것은 이전의 M이 아니었다. 문제는 성적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M의 성적은 나아지지 않았다. “쪽팔려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M의 아버지도 무던히 애쓰셨고 나또한 어떻게든 해보려고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모든 게 이대로 끝난다면 저 아이는 영영 자신감을 회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책하면서 불만에 사로잡혀 세상을 비관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점점 초초해졌다.
세월은 쏜살같이 흘렀다. 수능가채점을 해보니 모든 게 허사였다. 아이의 눈빛에 실망과 좌절의 기운이 역역했다. 뭐라고 위로를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모든 게 이렇게 끝나는구나 싶어서 나 역시 가슴이 아프고 밤잠을 설쳤다. 그러다 과로와 스트레스로 내가 쓰러지고 말았다. 수능발표를 얼마 앞둔 11월 20일이었다. 40도가 넘는 고열이 떨어지지 않았고 강력한 항생제와 영양제가 처방되었지만 망가질 대로 망가진 내 몸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약부작용으로 자율신경계의 교란이 생겼고 저혈압증상이 왔다. “내가 왜 이렇게 사는 걸까하는 생각에 서러움의 눈물이 복받쳐왔다. 병원에 있는데 M의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일 The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Korea에 원서를 써달라는 거였다.
다음날 아침 며칠 더 쉬어야한다는 의사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학교로 향했다. 눈앞이 어질어질하고 집중이 안 되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이를 악물면서 겨우 학교에 도착했다. M을 불러서 영문성적증명서를 작성했다. 어질어질하고 골이 흔들려 글씨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부르고 M이 타이핑해서 겨우 마감시간을 지켰다. 예비합격 통보를 받았다. 뭔가 희망이 보이는듯했다. 하지만 운명은 잔인했다. M이 지원했던 3+1과정이 교육부로부터 불법판정을 받았고 결국은 폐지되고 말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실망과 좌절감에 사로잡혀있는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담임교사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무기력함에 나 자신에게 분노를 느꼈다. M이 퇴사하겠다며 인사를 왔다. 몇 마디 말을 건 낸 후 난 M을 꼭 안아주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니 말이 필요 없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할 말을 이미 알고 있었다. “잘 가거라. 그리고 당당하게 살아라. 넌 할 수 있단다.” 이게 내가 M에게 한 마지막 말이었다.
새해가 되었다. 여전히 난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고 1월 어느 날 M의 아버지부터 전화가 왔다. 다시 한 번 도와달라는 내용 이었다. 그때부터 직접 외국으로 유학을 가는 방법을 모색했다. 최악의 내신과 수능, 흔히 말하는 스펙도, 상장도, 뭐하나 내세울게 없었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다. 영국 Lancaster University의 Management Mathmatics에서 합격통보가 왔다. 영국전체 대학순위 6위의 명문대학으로 특히 Business와 Management분야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유수의 대학이다.
이글을 쓰고 있자니 자꾸 눈물이 난다. 요즘 학교 상황이 안 좋다. 자꾸 선생님들이 학교를 떠나고 나 역시 그러고 싶다. 이것저것 혼란스럽고 어려운 일들이 오버랩 되어 다가온다. 불현 듯 M의 장난기 어린 모습이 보고 싶어졌다. 오후에 잠시 짬을 내어 M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의 밝은 목소리가 저쪽에서 들려왔다. “감사합니다. 모두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목소리에 희망과 자신감이 묻어있었다. 사실 난 M을 위해서 아무것도 해준 게 없다. 원서를 작성하는 일도, TOEFL시험을 치루는 일도, 입학면접도 스스로 준비했다. 난 다만 M을 믿었고 힘껏 안아준 것뿐이었다. 난 아이들의 가능성을 믿는다. 그 아이의의 현재상태가 아니라 미래의 모습을 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한다. 그러면 모든 게 믿는 그대로 되었다. M이 환하게 웃으면서 내게 다가온다. “선생님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면서, 그래 00야! 나도 사랑한단다. 잘 가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