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고등학교 입학안내처

이땅의 교육을 선도할 한국 최고의 명문사학으로 육성하겠습니다.

입학요강

 

글 쓴  이  

한수환

올린 날짜  

2007년 10월 25일 23시 26분 5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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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RE] 결국 너희들이 해냈구나!

등  록 파 일  

3회 졸업생 한수환입니다. 중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우리 애들을 한일고에 보내는게 가장 큰 영광으로 믿고 있는데 소망많큼 보내기가 힘이 듭니다. 그많큼 한일고의 위상이 많이 높아져 버린 탓입니다. 경기도 안산 비평준화 지역에서도 제일 수준높다는 신도시 아이들에게도 상당히 무리인듯 합니다.
2, 3학년 담임선생님 이셨던 선생님의 열정에 간만에 술한잔 먹고 학교 홈페이지를 배회하다가 놀라 자빠지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립니다. 가정을 이루고 둘째가 태어나고 어느덧 작은 나이 30중반을 넘어서며 교사로서 서서히 작아지는 학생들에 대한 열정을 몸소 느끼고..
선생님의 헌신적인 모습에 제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워 집니다. 적당한 스스로의 아집도 사라지고 세상의 흐름에 이미 소인배가 되어버린 저 자신을 다시 한번 추스리는 기회가 됩니다. 우리후배에 대한 좋은 충고를 조금더 먼저 살았지만 아직 덜 깨어 있는 저한테도 세상의 진부한 진리를 다시금 깨닳케 합니다.
또 힘을 내서 뛰어야 겠습니다. 선생님의 열정을 ..사랑을 존경합니다.


박용만님의 글입니다.

: 나른한 오후, 냉기가 감도는 교무실에서 업무를 보다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합격했습니다.” 온 몸에 힘이 빠지고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 무슨 말이든 해야겠는데 . . .
:
:명상아! 축하한다.
: 시간을 6년 전으로 돌려보자. 말쑥한 차림에 해맑은 얼굴로 늘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던 아이, 뭇 시선을 받으며 한일고에 입학했고 승승장구하던 네가 내겐 힘겨운 멍에처럼 부담으로 다가왔었다. 연이은 성적하락과 끝 모를 추락은 너와 나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고 죽을병에 걸린 중환자처럼 노란 하늘을 이고 죄인처럼 살아야했다. 날카롭게 파고드는 고통과 불면의 시간들은 파편 되어 날아왔고 아픈 상처만 남겼었다. 그 시절 교정 여기저기에서 나누었던 그 숱한 이야기들이 지금 이 순간, 영사기의 필름처럼 눈앞에 어른거린다.
:
: 젊은 혈기 탓일까, 두려움을 몰랐던 오만의 결과였나, 참담한 입시결과에 내 자존심은 무너져 내렸고 결국 넌 자신이 원하던 길을 걸을 수 없었지,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네게 대한 미안함과 분한마음에 치가 떨린다. 다음해 6월 고려대학교 법대에 다니던 네게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었다. “그만두고 다시 시험 보거라” 옆에서 운전하던 아내가 핀잔을 주었다. “당신, 어쩌려고 그래요. 그만하면 남부러울 게 없는 학교잖아요.” “당신이 그 아이의 인생을 책임질 거예요.” “예, 선생님 그리하겠습니다.” 예의 맑고 투명한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아닐까, 그 믿음은 태산을 옮길 수도 있지 않을까? 그해 넌 네가 원하던 대학에 진학했다. 난 아직도 확신한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걸어야한다는 것을.
: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군에 입대하기 전에 사법시험을 치루 거라” “법학대학원이 생기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를 거란다. 넌 할 수 있단다.” 이 말이 내가 네게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그리고 오늘 전화를 받았다. 가슴 벅찬 기쁨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
:재호야! 아니 한형, 축하한다.
: 왜 우리 반 아이들이 네게 그렇게 부르는지 사실 난 아직도 모른다. 영문도 모른 채 나도 아이들을 따라서 그렇게 불렀다. 하지만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 난 그 이유를 알았다. 네가 수능 후 집에 가서 알바를 해야 대학을 간다는 말을 했을 때, 널 짓누르던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겁고 힘겨운 것이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경찰대학에 떨어지던 날 망연한 너의 모습이 무었을 의미하는지, 왜 내가 좀더 사려 깊고 이해심 있는 교사가 되지못했을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럽기만 하구나.
:
: 한형! 내겐 잊을 수 없는 기억하나가 있다. 졸업 얼마 후 연세대학교 앞에서 우리 반 아이들이 긴 밤을 새워가며 이야기꽃을 피웠던 적이 있었지, 그때, 자그만 키에 해병대 옷을 입고 다부진 사내가 내 앞에 나타났었지, 바로 한형이더군. 모두들 대학생활을 만끽하고 있을 때 깎뚜기 머리에 군화를 싣고 나타난 한형을 보고 난 많이 울었지. 말없이 술잔만 비웠지만 잔 너머에 비친 한형의 얼굴에서 많은 사연들을 읽을 수 있었지.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한형이 야인처럼 생활하며 학업에 전념한다는 이야기를 졸업한 우리 반 아이들로부터 들었지, 문득 한형이 무척이나 보고 싶더군. 금년 초 아이들이 공주에서 모였지, 미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돌아온 나를 환영한다고 말이야, 그 틈에 어디서 많이 본 녀석이 하나 끼어있더군, 바로 한형이었지.
:“그동안 뭘 했니,” “사법시험을 치렀습니다.” 너무도 담담하게, 마치 우리 큰 형님처럼 말을 하더군. 그때 난 태산 같은 힘을 느꼈지, 그 긴 세월의 고통과 번민이 그 한마디에 베어 있었지. 그런 아이에게서 오늘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럴 때는 뭐라고 말해야하나 . . .
:아이들아!
:오늘 난 무척 기쁘다. 너희들이 자랑스럽고 가슴 벅차오른다. 하지만 한 가지 너희들이 기억할 것이 있단다. 오늘 너희들과 내가 느끼는 기쁨이 단지 너희들이 사법시험을 합격했기 때문은 아니어야한다. 그보다는 너희들이 흘린 정직한 땀과 뼈를 깎는 고통과 인고의 세월이 보답을 받았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껴야한다. 이제 또 다른 길이 너희들 앞에 펼쳐지겠지. 인생은 장미꽃을 뿌려놓은 탄탄대로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험난한 가시밭길도 아니란다. 힘들고 어려울 때면 이곳 금동산을 기억하고 힘을 내거라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고 하루하루를 진지하고 겸손하게 살거라. 너희는 자랑스러운 한일인이란다.
:
:Yes, I can.